| 관련 웹사이트

일본 / 중국 웹사이트

2015 동아시아문화도시 추진위원회         주소 우)28501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2층          전화번호  043-219-1212, 043-219-1278       팩스번호 043-219-1234

CultureCity EastAsia 2015, CHEONGJU               314, Sangdang-ro, Cheongwon-gu, Cheongju-si, Chungcheongbuk-do

“한중일 문자공동체를 만들자”

June 1, 2015

한중일 문자학술회의 29일 청주 초정약수에서 개최

“초정을 세계 문자문화 성지로”, “동아시아문화포럼” 등 제안

 

 

 

“한국은 문자문화와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지난 29일 초정약수스파텔 대회의실에서 열린 ‘동아시아 문자와 문화’ 학술회의에서 기조발제를 한 송기중 전 서울대 교수는 “한국처럼 문자문화에 관심이 높은 민족이 없다”며 “자국의 문자를 갖고 국경일로 만들거나 문자박물관을 건립하는 등의 노력은 세계에서 찾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초정약수는 세종대왕이 행궁을 짓고 요양을 하며 한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선의 르네상스를 펼친 곳”이라며 “이에 힘입어 청주시가 오래전부터 문자문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에 세계 문자문화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어 “문자는 인간이 축적해 온 지식과 지혜를 보존하고 전수하는 수단”이라며 “한글・한자・가나문자 등의 나라별 문자를 다양한 문화와 연결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되 한중일 삼국이 함께 문화문화를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문자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송 교수는 고대 국어의 표기와 어휘, 한자음, 역학서 분야는 물론, 알타이어에 속하는 몽골어·만주어·여진어·돌궐어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이며 국어계통론 분야에서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학자다. 

 

이어 지정발표에 나선 송재국 청주대학교 교수(철학・인문대학장)은 한글의 창제원리와 함께 천지인(天地人) 3재의 가치를 설명했다. 송교수는 한글 속에는 천지인(天地人) 3재가 내재돼 있으며 동양철학, 특히 주역의 사상과 과학, 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글의 위대함을 주장하고 한국인이 세계적인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상태교수는 중국 한자의 구성원리는 ‘문’과 ‘자’가 합쳐진 형태소이고, 한글을 여러개의 자음과 모음이 모여 글자를 만들며, 일본의 가나문자는 한 음절이 한 글자로 돼 있다고 주장한다. 한자는 형태소, 한글은 자모, 가나는 음절로 돼 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문자의 형태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가 생기게 된 것이라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중국을 대표해 발표한 칭다오대 풍국영 교수는 중국 한자의 기원과 형태 등을 소개한 뒤 한자가 중국문화에 미친 영향을 상세하게 소개했으며 문자가 문화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서예작품 등을 통해 소개했다. 풍 교수는 특히 동아시아문화도시의 전문가들이 함께 미래를 맞대고 문화담론과 미래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동아시아문화포럼’을 정기적으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을 대표해 지정발표를 한 훗가이도대학의 잇시키 마이코 박사는 한글과 가나문자의 보조동사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학술회의에는 청주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은 물론이고 초정리 주변의 주민 등 250여 명이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 초정약수 일원을 세계 문자문화의 중심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민들의 염원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종대왕의 초정행궁 주요 업적

세종대왕은 1444년 초정약수터 주변에 행궁을 짓고 두 차례에 걸쳐 121일간 요양을 하며 다양한 문화정책을 펼쳤다. 세종은 이곳에서 한글창제를 마무리 하고 대신과 주민들에게 한글을 보급하는데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은 한글창제 반대파였던 최만리 등을 유치장에 하룻동안 가두도록 명령할 정도로 한글창제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또한 용비어천가를 비롯한 세종대왕의 수많은 창조물이 초정리의 약수와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세종실록 등의 고증을 통해 확인되었다.

 

세종은 마을 주민들에게 술과 고기를 하사하고, 노인들을 초청해 양로연을 베풀었으며 청주향교에 통감훈의, 성리군서, 집성소학 등 책 9권을 하사하였다. 당시 중부지역에 가뭄이 계속되자 “청주목 백성들이 나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며 집집마다 벼 2섬을 무상으로 전달토록 하였으며, 어가 행차 중에 전답이 훼손된 농가에게는 쌀과 콩으로 보상토록 하는 등 어짊을 실천하였다.

 

특히 세종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투표를 통해 조세법을 연분 9등법(풍흉)과 전분 6등법(토질)으로 개정키로 한 뒤 초정약수 인근의 청안현 등에 시범으로 도입하고 전국에 확대 보급하였다. 당시 세종은 정인지 등을 청안으로 보내 시범 도입한 조세제도와 농작물 수확의 현황을 점검토록 하였으며, 이를 기준으로 전국에 시행토록 했다. 박연에게 편경을 만들어 시연토록 하는 등 조선의 르네상스를 직접 실천에 옮긴 것이다.

 

세종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초정을 다녀간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 시절에는 신숙주, 최항, 황수신, 이사철, 이개 등의 대신들이 동행했으며, 이후 세조도 초정리를 방문했다. 또한 조선후기에는 실학자인 이규경, 일제시대에는 한글학자 최현배가 초정을 방문하는 등 많은 대신들과 학자들이 잇따라 초정리를 찾았다.

 

우의정 신개는 “초정약수의 맛은 세상에 존재하는 약수 중 단연 으뜸”이라고 말했으며, 예조판서 김종서는 “약수가 솟구치는 것은 상서로운 기운”이라고 했다. 또 신숙주는 “행궁에 봄이 늦더니 비오고 나서 맑게 개이자, 눈에 보이는 산천 그림으로 형용키 어렵다”며 초정행궁 풍경을 예찬했다.

 

특히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이론을 완성한 한글학자 최현배는 1932년 8월에 초정약수를 방문한 뒤 동아일보 지면에 <한글순례, 청주에서>라는 특별기고를 통해 “세숫대야에 약수를 부어 두 눈을 씻으니 세종대왕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느낌”이라며 “세종께서 병환이었지만 초정으로 오셔서 오직 훈민정음 제작에 몰두하셨다”고 표현하였다. 이와함께 일제강점기에 충북선이 개통되고 내수역이 생기면서 여름에는 초정약수 관광단 모집행사와 기차할인 행사가 전개돼 매년 전국 각지에서 수만 명이 방문하는 등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충북도와 청주시가 전문기관에 의뢰한 연구결과에 의해 밝혀졌으며, 청주시문화재단은 ‘세종대왕 123일의 비밀’이라는 책으로도 펴낸 바 있다.

 

 

Tags:

Please reload

추천게시물

동아시아문화도시 교토서밋

September 6, 2017

1/9
Please reload

최근게시물
Please reload

날짜별 게시물 보기
Please rel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