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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젓가락을 우습게 봐선 안돼"

September 13, 2015

 

  

정치·경제분야 경쟁해 온 한중일

 

문화적으론 줄곧 행복한 관계

 

그 중심에 젓가락 문화가 있어

 

삼국이 2,000년 간 공유해온

 

젓가락은 동아시아 문화의 원형

 

'온리 원 한국' 찾자

 

한국만 할 수 있는 창의성 살려야

 

  

2012년 5월 중국 상하이에 모인 한ㆍ중ㆍ일 삼국의 문화장관은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 및 융합을 도모하기 위해 매년 국가별로 한 곳씩 동아시아문화도시를 선정키로 합의했다. 다채로운 교류 행사를 통해 삼국간 상호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서다. 2014년 한국의 광주광역시, 중국의 취안저우, 일본의 요코하마를 시작으로 올해는 청주, 칭다오, 니가타가 각국의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됐다.

 

초대 문화부장관(1990~1991년)을 지낸 이어령(81)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장은 청주 동아시아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을 맡아 삼국의 공통된 문화원형인 젓가락을 테마로 축제의 장을 준비 중이다. 청주시는 11월 11일을 ‘젓가락의 날’로 선포하고, 젓가락 사용 경연대회, 젓가락 공예전, 젓가락 학술대회 등 다양한 국제 행사를 치를 예정이다. 미물에서 우주의 원리를 추출해내는 ‘이어령 인문학’의 산물인 젓가락 페스티벌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평창동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요새 어떻게 지내시는지.

 

“그간 하나하나 정리하는 데 집중해 왔는데, 나이 80을 지나니 과거를 돌아다 본다는 것 자체가 우습더라. 그게 돌아봐지는 게 아니다. 오늘 하루를 더 살았기 때문에 하루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죽을 때까지 그걸 하자, 그런 생각으로 다시 창작도 하고, 글도 쓰고, 방송에도 나가고 그런다(다음달부터 순차적으로 쏟아져 나올 새 책이 다섯 권에, KBS의 10회짜리 프로그램 ‘이어령의 100년 서재’에도 출연 중이다). 내가 스피노자도 아니고, 여태 사과나무 한번 심어보지 않은 사람이 지구가 멸망한다고 갑자기 사과나무를 심겠나.(웃음)”

 

-‘젓가락 페스티벌’도 그래서 벌인 일 중 하나일 텐데,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정치ㆍ경제를 떠나서 아시아 삼국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확인하고 그것을 각국의 도시를 중심으로 연결하면, 비록 유럽연합(EU)과 같은 형식은 아니더라도 문화공동체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동아시아 세 나라가 정치ㆍ경제적으로는 불행한 일을 많이 겪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줄곧 행복한 관계였다. 우리가 일본 아스카ㆍ나라 시대에 불교를 전파했고, 독특한 백자ㆍ청자를 만들어내 일본에 전래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도 배용준의 한류가 있었다. 오늘날 일본이 경제대국, 군사대국이지만 문화의 원형은 늘 한국에 있었다.

그렇다면 삼국이 2,000년 이상 같이 나누어 본 문화가 무엇이 있는가. 한자보다도, 음식보다도, 언어보다도, 딱 하나, 바로 젓가락이다. 은나라 때 시작된 젓가락은 더 발전시킬 수도 없고 퇴화할 수도 없어 ‘궁극의 디자인’이라고 불린다. 손으로 잡아야 하니까 한쪽 끝은 사각형이고, 음식을 집어야 하니까 다른 쪽 끝은 원형이다. 한 몸 안에 사각형과 원이라는 이율배반이 공존하는 디자인이 젓가락인 것이다.”

 

-한ㆍ중ㆍ일 세 나라의 젓가락이 어떻게 같고 다른가.

 

“일본과 중국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따로 쓰는데, 한국은 마른 음식과 국물 음식을 동시에 먹기 때문에 동양 삼국 중 유일하게 수저를 함께 쓴다. 그래서 유일하게 금속으로 젓가락을 만든다. 국물을 떠먹는 숟가락을 나무로 만들 수 없어 놋쇠나 은으로 만드는데, 젓가락도 세트로 거기에 맞추는 거다. 우리가 국물을 제일 많이 먹는 탕 문화이기 때문이다. 고분을 발굴하면 우리 젓가락만 금속이라 유물로 남아 있다. 반면 중국은 많은 사람이 한 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덜어먹기 때문에 멀리 있는 음식을 집어 먹을 수 있도록 젓가락이 아주 길다. 일본은 육식을 안 하고 생선을 먹었기 때문에 가시를 발라내기 위해 젓가락이 짧고 뾰족하다. 젓가락만 봐도 축소지향임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문화 연구를 이거냐 저거냐의 방식으로 해왔는데, 앞으로는 인터페이스를 연구해야 한다. 음식을 직접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직접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과 음식 사이에 있는 것, 인간과 음식 사이의 관계, 즉 젓가락과 같은 도구를 연구하는 것이 인터페이스 연구다.”

 

-그래서 젓가락이 삼국 문화 교류의 주제가 된 것인가.

 

“그래서만은 아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에서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는 아이들의 비율이 25%밖에 안 된다. 도시락 싸갈 때도 전부 포크와 스푼을 싸서 다닌다. 포크와 스푼은 교육이 필요 없다. 누구나 스스로 사용법을 터득할 수 있다. 하지만 젓가락은 학습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제대로 못한다. 젓가락질은 이른바 문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인터페이스인데, 대대로 내려오던 전통 문화가 단절돼 버렸다. 일본과 중국은 세 살 전에 젓가락질 하는 아이들의 비율이 90~100%인데, 우리는 오죽 문화적 전승이 약했으면 25%밖에 안 되겠는가.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젓가락 학술서 하나 없다.

 

하지만 일본사람, 중국사람도 젓가락 게임은 생각하지 못했다. 콘테스트를 해서 젓가락 신동도 뽑고, 젓가락 도사도 뽑으면, 이제 부모들이 젓가락질을 가르칠 것이다. 고려가요 ‘동동’에 나오는 분디나무 젓가락을 근사하게 만드는 디자인 경연대회도 할 것이다. 젓가락 하나가 1억원까지 갈 수 있는 젓가락 산업을 만드는 거다. 젓가락에 이름도 새겨주고, 옻칠도 하고, 나전칠기로도 만들고, 3D 젓가락도 만드는 거다. ICT 젓가락도 만들자. 스마트 젓가락을 만들어서 음식을 집으면 염도가 얼마고, 당도가 얼마고, 중금속이 얼마고를 다 측정해서 스마트폰에 자동으로 저장되게 하는 것이다. 애플도 이것은 절대 못한다. 이런 것이 경쟁력이다. 겉으로 보면 우스운 젓가락 게임으로부터 시작했지만, 이것이 애플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한국의 길이다. 이런 게 바로 창조경제고, 창조문화다.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로 삼는 게 아니라 젓가락의 날로 선포하는 이유다.

젓가락에는 먹는 사람이 음식을 먹기 좋도록 배려하는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다. 집어 먹기만 하면 되도록 먹기 좋게 잘라져서 나온다. 반면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스테이크는 ‘난 만들어만 줄게, 먹는 건 네가 해’의 마인드로 덩어리째 내주는 것이다.”

 

-주부 입장에서 그 견해에는 반대다. 여러 사람 먹기 좋으라고 한 사람이 다 다져서 내놓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 힘든 사람도 다른 데 가면 똑같이 편한 음식 먹는다. 자기 아들이 있는데, 먹기 좋도록 썰어주고 잘라주는 게 어머니의 사랑이지, ‘나 힘드니까 알아서 먹어’, 이게 사랑인가. 요즘 어머니들이 그래서 저출산이고, 학교 급식을 하는 거다. 일본 얘기를 해서 안됐지만, 일본 여자들은 지금도 그 고생을 하면서 아이들 도시락을 다 싸준다. 이런 사람들이랑 경쟁해서 이겨야 된다. 물론 힘들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이 먹는 사람을 생각하고, 먹는 사람이 만드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인터렉션이고, 인터페이스다. 그러면서 서로 정도 생기는 것이다.

젓가락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일본 기업가들은 내가 일본에 가면 아이디어를 달라고 찾아온다. 생활용품 제조기업 카오(花王)의 회장은 나랑 점심 먹은 얘기를 인터넷에 올릴 정도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내가 찾아가서 아이디어를 줘도 반응이 없다. 젓가락의 날이 마침 철도의 날과 겹치길래, 라면 회사에 연락해서 ‘젓가락이 없으면 라면을 먹을 수 없습니다’라는 홍보 문구를 컵라면 뚜껑에 인쇄해보자고 제안했다. 묵묵부답이다. 이건 온 국가의 문제다. 온 국민들이 창조적으로 호기심이 있어서 ‘야, 그 젓가락대회 재미있겠다’ 하고 반응해야지 ‘젓가락대회? 웃기네. 글도 쓰고 장관까지 했다는 사람이 쩨쩨하게 무슨 젓가락이야. 그걸 무슨 아이디어라고 내!’ 하면 망하는 거다.”

 

-최근 일본어로 펴냈던 책 ‘가위바위보 문명론’이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종횡무진했던 지적 여정이 동아시아 문명론으로 귀결되는 듯한 인상이다.

 

“너무 흔해서 관심 갖지 않는 것에 파고들어 그 안에서 문화와 역사를 캐내는 것이 창조고, 나 아니면 못했을 발굴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젓가락 속에서 저렇게 많은 의미를 캐내고, 저기에서 미래 한국인의 얼굴을 보는 것, 이게 바로 창조다. 남들이 중국과 일본에만 관심을 가질 때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였다. 슬프지만 그렇게 불러야만 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된다. 한국이 잘났다고 큰 소리 치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만 있다’고 해야지 ‘너희보다 낫다’고 비교하면 안 된다. ‘온리 원 한국’이 되어야 한다.”

 

-최근 몇 달간 소설가 신경숙씨의 표절논란으로 문학계가 시끄러웠다. 오랜 경력의 문학비평가로서 어떻게 보았나.

 

“표절 여부 자체보다 왜 별것도 아닌 작가의 것을 베꼈는지 그게 분하다. 나는 일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식민지 아이로 늘 일본 애들한테 기죽어 살았던 것이 가슴에 말뚝처럼 박혀있다. 나는 일본말로 책을 써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왜 그랬겠는가. 그 사람들에게 그때 배운 일본어로 책을 써서 일본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쓴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거다. 내가 쓴 일본어 책이 일본 대학입시 국어 예상문제집에 실려 있다. 나는 일본인들이 내 글을 베끼게끔 만들었다. 선배들이 이렇게 해왔는데, 후배들이 왜 그러는가. 왜 그렇게 기개가 없는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설을 써야 한다. 운동화에는 최고로 좋은 운동화가 있지만, 문학은 최고로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 게 있다면, 괴테 이후, 셰익스피어 이후, 작가가 나올 필요가 없다. 작가에게는 독창성과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상 타려고 글 쓰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 누가 나한테 노벨상 좀 줬으면 좋겠다. 거절하는 재미 좀 누려보고

싶다.(웃음)”

 

-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대학의 위기, 온통 위기 담론이다. 어디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문명은 사고를 낳고, 사고는 문명을 낳는다. 우리는 늘 위기와 사고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사고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그게 정치고, 경제고, 문화다. 위기를 가장 많이 말하는 나라가 한국이지만, 위기가 아닌 나라가 어디 있나. 세 살짜리 아이가 피난 가다 죽어 파도에 휩쓸려 오는 곳도 있다. 우리가 급격한 민주화, 산업화를 이루면서 사고도 커지고 많아졌다. 이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가 이뤄낸 기적들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식, 내 손자들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한국에 절망하고, 한국인임을 한탄도 많이 했지만, 역시 한국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못했을 것들 덕분에 내 조국과 민족이 자랑스럽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박규희 인턴기자(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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