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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은 한·중·일 화합 문화유산이자 자산"

October 22, 2015

[청주의 뉴아이콘 젓가락]⑪일본 대표 젓가락기업 '효자에몽' 우라타니 효우고 회장

 

 

일본 젓가락 대표기업 ㈜효자에몽 회장이자 NPO국제 젓가락문화협회 이사장인 우라타니 효우고(71·浦谷兵剛)씨가 지난 5일 청주를 찾았다. 사재를 쏟아부으며 50여년간 일본 옻칠 젓가락제품 생산에 헌신해 온 우라타니 회장이 이끌고 있는 ㈜효자에몽은 그의 선조대인 1921년 문을 연 100년 가업 젓가락전문기업이다. 그는 일본 전통문양 젓가락부터 다자인이 가미된 현대적 젓가락까지 800여 종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도쿄 등 32개 대형백화점을 비롯해 500여 개의 젓가락전문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우라타니 회장은 오는 11월 11일 청주에서 펼쳐지는 젓가락페스티벌 전시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1억원대의 고가 젓가락부터 옻칠제품까지 다양한 젓가락을 사심없이 제공해 줄 계획이다. 자비를 들여 청주를 방문한 그는 "차분하고 정리정돈된 느낌의 청주가 매우 편안하다"며 "이어령 2015동아시아문화도시 청주 명예조직위원장을 만나 한·중·일 공동 젓가락 유네스코 등재에 대해 생각의 일치를 봤다"고 전하며 무척 기뻐했다. 

 

 

기자를 만나자 마자 자신이 만든 다양한 젓가락제품부터 풀어놓는 그는 영락없이 젓가락에 꽂혀있는 '젓가락 전도사'였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정장 왼편에 꽂은 ㈜효자에몽 회사 뱃지가 빨간 옻칠을 한 젓가락모양이어서 눈길을 끈다는 이야기에 넥타이 대신 매는 타이슬링도 젓가락모양이라며 웃었다. 

"일본의 싼 젓가락 말고 일본의 진짜 젓가락을 보여주고 싶다"는 진심 하나로 선뜻 자신의 모든 소장젓가락을 청주에 보내주기로 한 그를 만나 '52년 젓가락 인생'을 들어봤다. 

 

지난 5일 청주를 방문한 우라타니 효우고 회장이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효자에몽의 제품 젓가락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 신동빈

 

▶ 어떻게 젓가락에 관심갖게 됐는지. 

- 아버지가 옻칠장인이셨는데, 나는 그것을 이어받기가 정말이지 싫었다. 18살, 고등학교 3학년때 나는 야구선수였다. 야구감독님이 집에 2, 3번 찾아와서 내가 계속 야구를 할 것을 권했다. 원래 나는 3남 2녀의 5남매 중 막내였는데 형님 두분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막내인 내가 장남이 됐다. 야구감독님 말씀에 아버지도 '네, 알겠습니다'라고 하셨지만, 눈빛으로는 '너가 가업을 이어야하는데 … '라는 애절한 눈빛이 느껴졌다. 나는 차마 아버지의 그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 나는 도쿄의 젓가락 도매상에 취직해 5년 3개월 동안 유통과 판매 등에 대해 배웠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젓가락이 마음에 들어온 사건이 있다면. 

- 한번은 어느 식당 주방 뒤에서 종업원이 나무젓가락인 와루바시를 장화발로 마구 밟아서 쓰레기통에 넣는 것을 봤다. 그래서 식당주인에게 일본에 좋은 젓가락문화가 있는데 왜 저렇게 하느냐고 했더니 돈만 많이 벌면 된다고 했다. 옻칠장인 아버지를 둔 나는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 사건이 내 마음속에 크게 들어왔고 나는 이후 젓가락에 대한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그 사건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그동안 어떤 젓가락을 만들어왔는지. 

- 젓가락도 하드부분과 소프트 부분으로 나뉜다. 그동안 사람들은 소프트 부문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젓가락을 만들어왔다. 나는 마음과 기분을 고려한 소프트부분은 강화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젓가락의 역사와 문화, 사람과 젓가락의 연결고리 등을 계속 연구해 왔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오는 젓가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연구를 통해서 얻은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달라. 

-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젓가락을 본다. 그러나 사실은 거꾸로 젓가락이 사람을 본다. 젓가락을 잡는 법, 젓가락을 사용하는 법,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나는 그것을 52년간 계속 관찰하고 보아왔다. 거의 틀린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일반 시민들의 젓가락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 1996년부터 젓가락교육을 시작했다. 그 전부터 계속하고 싶었는데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오갈데 없는 비행청소년을 30년간 돌본 가톨릭 신부가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공통된 특징이 '젓가락질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젓가락교육을 시작했다. 그리고 각 학교를 찾아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젓가락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사실 일본 사람들 대다수는 젓가락을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늘 마시는 공기(空氣)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무슨 젓가락교육이야?' '왜 젓가락교육을 받아야 해?'하고 생각하지만, 젓가락질도 못하면서 젓가락문화권 사람이라고 해선 안된다. 그리고 젓가락질은 모든 사람 인성의 바탕이 된다. 

▶'한·중·일이 젓가락을 두고 네 것 내 것 주장하지말고 화합해야 한다'고 한 말씀이 감동적이었는데, 그런 생각의 바탕은 무엇인지. 

- 내 명함에도 '식(食)은 생명, 젓가락은 인(人)'라고 써 있듯이 식(食)은 사람의 생명을 이끌고, 젓가락은 사람을 만든다. 따라서 젓가락은 한·중·일과 그 주변의 나라가 화합할 수 있는 공통의 문화유산이자 자산이다. 그래서 나는 도쿄에 동아시아 사람들을 모았다. 한·중·일과 베트남, 미얀마, 타이완 등의 학자들을 모아 2012년 국제젓가락문화협회를 만들었다. 그것은 세계의 흐름을 볼때 동아시아의 힘은 날로 커지고 있고, 리더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젓가락을 통해 화합하고 번영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젓가락으로 한·중·일 3국이 구체적으로 해나가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 우선 젓가락연구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국제젓가락협회를 만들어야 하고, 각 나라별 지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협회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그 나라의 젓가락으로 그 나라의 음식을 먹으며 젓가락문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번 청주 방문이 그런 일들과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답을 얻었는지. 

- 그렇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나는 생각의 일치를 보았다. 우리는 '한·중·일 공동 젓가락 유네스코 등재'를 협의했다. 나도 대찬성을 했고, 그리고 우리는 차근차근 시작해 나가기로 했다. 오는 11월 11일 청주 젓가락 페스티벌때 다시 구체적인 추진전략을 논의하기로 했다. 일본은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NPO국제 젓가락문화협회가, 한국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중국은 슈화롱 상하이젓가락 문화촉진회 회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젓가락 유네스코 등재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지. 

- 한·중·일 뿐 아니라 젓가락을 사용하는 모든 나라가 각국의 식(食)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그것을 통해 각 국의 관광, 문화콘텐츠, 산업화 등 젓가락이 주는 효과를 구현해 내는 것이 목표이자 의미이다. 

▶오는 11월 11일 청주 젓가락페스티벌 전시 때는 어떤 젓가락을 보여줄 계획인지.

- 일본의 옻칠 젓가락이다. 그리고 젓가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젓가락이 하나만 있을 때는 단지 나무막대일 뿐이다. 두개가 있을 때 젓가락이 된다. 하나를 기울이면 사람인(人)이 되고, 서로 교차시키면 더하기(+), 나란히 놓으면 같다(=)가 된다. 또 엄마와 아이, 스승과 제자, 남자와 여자가 된다. 

▶젓가락 외길인생 50년을 되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 역시 내가 옳았다. 내가 정말이지 좋아했던 야구를 죽을 마음으로 끊고 내가 만들고 싶은 젓가락을 50년간 만들었다. 내가 추구해 온 일은 젓가락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젓가락문화에 대해 손을 들어줘서 너무 기쁘고 큰 힘이 된다. 젓가락은 내 인생 그 자체다. 다행히 나의 세 아들은 나와 달리 모두 거부감없이 젓가락사업에 동참해 힘쓰고 있다.

인터뷰가 끝나자 "인생을 반추한 시간이 너무 감사했다"며 정중하게 고개숙여 "아리가도우 고자이마스(ありかどう ございます)"라고 인사하는 노신사에게서 진심이 묻어났다. 18살 한 소년의 가슴에 들어온 '사명감'이 에너지가 되어 '52년 젓가락 외길'을 걸어온 그의 모습에서 젓가락이 전해준 인생의 참 의미와 깊이가 묻어났다. 그가 만드는 옻칠젓가락처럼 단단하고 견고한 젓가락의 힘이 느껴졌다. / 송창희 

333chang@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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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cd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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