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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창조 이력서] 청주 젓가락 페스티벌

November 21, 2016

젓가락으로 집어낸 2000년 문화유전자(밈·MEME)

 ▲ 충북 청주시가 지역 작가 등을 통해 개발한 분디나무 젓가락. 지난해부터 11월 11일 전후로 열리는 ‘청주 젓가락 페스티벌’은 이어령 교수가 제안한 것이다. photo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옹알이를 하며 말을 배우듯
   아가야 이제는 젓가락을 쥐거라.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천 년 전 똑같이 생긴 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셨지.
    
   그리고 젓가락처럼 늘 짝을 이루어
   함께 일하고 사랑하며 오랜 날을 지내셨단다.
   아느냐. 아가야 젓가락이 짝을 잃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네가 젓가락을 잡는 날
   오랜 역사와 겸상을 하고
   신라 사람, 고구려 사람, 백제 사람 그리고
   한국인이 되고 아시아인이 되는 거란다.
    
   아가야 들리느냐 부엌에서 도마질하는 어머니
   먹기 좋게 음식을 썰고 다지는 그 마음의 소리 있어
   오늘도 우리는 먹는다. 젓가락 숟가락만으로.
   아! 이 생명공감(生命共感),
   깃발처럼 젓가락을 들고 오너라.
    
   오늘 아침 처음 젓가락을 잡은 내 아가야.
   
   - 이어령, ‘생명공감(生命共感) 속으로’

 


   “한국 사람은 왜 미끄러운 놋젓가락으로 콩알을 집어 먹지?”
   
   이어령 교수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저하는 사이 또 하나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왜 젓가락질도 못하면서 놋젓가락으로 콩알을 집어 먹는다고 자랑할까? 숟가락으로 푹 퍼 먹으면 되는데 말이야.”
   
 지난 11월 4일, 이어령 교수는 예고한 대로 젓가락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호 주간조선이 발간되는 날은 11월 11일. 빼빼로데이이자, 젓가락데이이기도 하다. 충북 청주에서는 지난해부터 11월 11일을 전후로 젓가락 페스티벌을 연다. 올해 청주 젓가락 페스티벌은 11월 10일부터 27일까지 18일간 열린다. 페스티벌에서는 한·중·일 젓가락 유물과 창작 젓가락 등 3000여점이 전시되고, 각국의 젓가락 작가들이 소위 장인 열전을 펼친다. 이 페스티벌의 중심에 이어령 교수가 있다. 2015년 ‘한·중·일 동아시아문화도시’ 국가 프로젝트에서 청주가 중국의 칭다오, 일본의 니가타와 함께 문화수도로 선정됐는데, 그는 이 프로젝트의 명예위원장을 맡았다. 청주시에서 그를 조직위원장직에 위촉하기 위해 다섯 차례나 찾아와 간청하자 조직위원장 대신 수락한 자리다.
   
   이어령 교수는 한·중·일 문화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젓가락 페스티벌을 제안했다. 왜 하필 젓가락인가. 한국인 모두가 매일 사용하는 흔하디 흔한 젓가락에서 그는 수천 년 동안 내려온 한·중·일 공통의 문화유전자(밈·MEME)를 풀어냈다. 지난해 KBS ‘이어령의 100년 서재’ 최종회가 바로 ‘생명공감-젓가락의 문화유전자’였다. 그렇다면 젓가락과 청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청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곳이자 고분에서 수천 점의 젓가락이 출토된 곳이다. 또 청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탄생한 곳이자 멸종 위기의 두꺼비 서식지를 시민의 힘으로 살려낸 곳이니만큼 생명문화도시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시각이다. 또 있다. 이어령 교수는 국문학 교수답게 일본과 중국에는 없는 분디나무 젓가락이 고려가요 ‘동동’의 시가에 등장한다는 것, 그 분디나무의 명산지가 청주라는 것도 지적한다.
   
   젓가락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두 개의 막대기에 불과한 젓가락 이야기만으로 1시간40여분이 훌쩍 지나갔다. 젓가락에 담긴 수천 년의 비화(祕話)가 봉인이 해제된 듯 술술 풀려나왔다. 이어령 교수는 젓가락에서 도구의 탄생과 한국인의 정체성, 한·중·일의 문화유전자 차이와 한국인만의 사이 문화, 가락 문화, 짝 문화를 발견해냈다. 어쩌면 이번호 창조이력서에서 이어령 교수의 진가가 가장 두드러지는지 모른다. 그는 암호해독자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지혜와 지식, 창조력과 순발력으로 사소해 보이는 사물과 언어에 숨겨진 문화적 의미를 해체하고 또 해체해 마지막 하나의 티끌까지 파헤쳐내는 암호해독자.
   
   
   젓가락은 남을 배려하는 문화
   
   이어령 교수는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젓가락에서 한국인의 ‘사이문화’를 엿볼 수 있지. 젓가락으로 한 알씩 집어 먹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문화야. 자연히 공자의 ‘인(仁)’을 실천하는 것이지. 혼자 독식하는 이기심을 억제하는 것이고. 한국인의 욕 가운데 ‘퍼 먹는다’는 말이 있잖아. 젓가락 문화가 없었다면 콩알을 숟가락으로 혼자 퍼 먹는 추악한 한국인이 되는 것이에요. 또 음식을 잘게 자르지 않으면 젓가락질이 되겄어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먹기 좋도록 미리 한입 크기로 잘라 주니까 젓가락으로 식사를 할 수 있지. 서양 사람처럼 스테이크를 덩어리째 구워서 내오면 젓가락으로 되겄어? 개라면 몰라도 사람이 어떻게 그걸 먹어요. 결국 부엌에 있어야 할 식칼이 식사 테이블에 나온 것이 서양의 포크와 나이프 문화야. 젓가락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라면, 포크·나이프로 상징되는 서양문화는 자기가 자기 먹을 것을 썰어 먹는 개인 중심의 문화야.”
   
   젓가락뿐 아니다. 이어령 교수의 김치와 비빔밥 이론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남들이 김치를 영양학적 관점으로 연구할 때 그는 홀로 문화적 시각에서 접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어령 교수의 음식문화론은 식품영양학 전문가들의 이론적 토대가 돼왔다. “이어령 교수는 김치를 오색(五色) 오미(五味)를 갖춘 맛의 우주론이라고 했다” 혹은 “이어령 교수는 우리 전통음식에는 음양오행 사상이 깔려 있다고 했다”고 인용하는 식이다.
   
   보자기는 또 어떤가. 그는 일본어로 먼저 쓰고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보자기 인문학’을 통해 보자기에 담긴 한국의 문화유전자를 파헤쳤다. 450여쪽에 걸쳐 보자기 이야기를 했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인의 문화는 서양의 ‘넣다’와 비교되는 ‘싸다’의 문화라는 것을 피력했다. 서양문화는 도시든 옷이든 미리 만들어 놓은 틀에 넣는다. 가방도 그렇다. 그러나 ‘싸다’의 보자기 문화는 병을 싸면 길쭉해지고 수박을 싸면 둥근 것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쓰다 버린 천 조각을 이어 만든 ‘조각보론’에 이르기까지. 그의 기발한 발상으로 쌓여가는 문화론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어령 교수처럼 사소한 일상의 물건을 텍스트의 기호로 분석해 문화론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학자가 또 있었던가. 그를 한국의 레비스트로스나 롤랑바르트로 비유하는 것이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본격적으로 젓가락 해부다. 젓가락은 한국인만의 도구가 아니다. 아시아권에서 두루 사용한다. 이어령 교수는 한·중·일 젓가락 문화를 조목조목 비교했다. 먼저 형태적인 측면이다. “젓가락 모양을 잘 봐. 중국 젓가락은 길고 끝이 뭉툭해. 일본은 짧고 끝이 뾰족하지. 우리는 그 중간이고. 왜 그런지 알아요? 중국 젓가락이 긴 것은 운반을 위해서야. 음식을 가운데 가져다 놓고 각자 자신의 그릇에 옮겨 담잖아. 끝이 뭉툭한 것은 중국 음식에 나물이 많아서이고. 일본은 어때요? 밥그릇을 턱 밑까지 가져와서 먹잖아. 그러니 젓가락이 길 필요가 없지. 또 국물 문화가 아니라서 젓가락 하나면 돼. 우리는 건식 문화라도 국물이 꼭 있어야 하니까 숟가락과 젓가락이 같이 있어야지. 음양의 조화를 한국 사람처럼 좋아하는 민족이 없어요.”
   
   그의 한·중·일 젓가락 문화론은 언어적인 측면으로 옮겨졌다. “일본은 젓가락을 ‘저(著)’라고 쓰고 ‘하시’라고 해요. 그 소리를 숫자로 쓰면 8과 4가 되지. 그래서 일본에서 8월 4일이 젓가락 기념일이야. 또 ‘하시’는 ‘다리(橋)’라는 음과 같아. 사람과 사람, 성과 속을 이어주는 상징이 되기도 해요. 중국인의 경우 젓가락을 가리키는 말이 많아. 요즘 중국인들은 젓가락을 ‘저(著)’라고 하지 않고 ‘쾌자(筷子)’라 불러요. ‘빠를 쾌’ 자를 쓰지.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풍습이 중국 전역으로 퍼진 건 해양문화가 발달한 남송 무렵이야. 강이나 바다에서 배가 멈추는 것은 뱃사람들에게 죽음을 의미하거든. 그래서 ‘빠르다’와 음이 같은 ‘쾌’자를 쓴 거예요. 빠른 항해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거지. 또 중국에서는 딸을 시집 보낼 때 젓가락을 챙겨주는 풍습이 있어요. 아이가 빨리 생기길 바란다는 의미지.”
   
   “그런데 말야, 재밌는 게 있어요.” 강연하듯 말을 잇던 이어령 교수는 씨익 웃었다. 새롭고 재밌는 이야기의 예고편에서 나오는 표정이다. “먹는 도구의 이름이 인체와 연결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 숟가락, 젓가락은 ‘손가락’의 연장이거든. 재밌잖아. 그런 면에서 젓가락은 몽둥이와 정반대의 속성을 지녔어요. 몽둥이는 주먹의 연장이자 근육의 연장이지만 젓가락은 손가락의 연장이자 신경의 연장이에요. 힘의 상징인 몽둥이는 주먹보다 크고 뭉툭하지만, 섬세함의 연장인 젓가락은 손가락보다 가늘고 뾰족해야 해. 젓가락은 내 몸의 피와 신경이 통해 있는 아바타인 셈이지.”
   
   “재미난 게 또 있어요.” 그는 말을 꺼내기 앞서서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가락’에 주목했다. “어디 손가락 뿐이에요? 머리에서 갈라진 것은 머리카락, 발에서 갈라진 것은 발가락이지. 또 온몸에서 갈라진 그 가락이 장단을 맞추면 ‘노랫가락’이 되고 ‘신가락’이 돼. 한국의 독특한 가락 문화, 짝 문화가 탄생하는 것이지.” 그의 발상에 탄성이 나왔다. 젓가락을 손가락의 연장선에서 보더니 손가락을 머리카락·발가락으로, 발가락을 노랫가락으로 확장시켜 나갔다. 같은 층위로 연결되던 의미의 층위는 훌쩍 건너뛰어 이종(異種) 교배가 됐다. 진부하고 낡은 개념에서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수저.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쳐 이르는 말. 이 일상 용어에서 이어령 교수는 ‘짝의 문화’를 읽어냈다. “수저는 두 개의 짝이 하나가 된 용어야. 포크와 나이프를 ‘포나이프’라고 하는 거 봤어? 숟가락으로는 국물을, 젓가락으로는 건더기를 먹지만 서로 바뀌기도 해. 마른 음식을 숟가락으로 먹기도 하고, 국물 음식을 젓가락으로 먹기도 하지. 젓가락과 숟가락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짝의 문화야. 혼자서는 안 되지. 우리는 점점 짝의 문화를 잃어가고 있는데 어쩌면 전 세계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이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일지 몰라요. 사이 문화와 짝의 문화에서 기적의 순간이 창조되는 경우가 많거든. IT 분야만 해도 그래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폴 앨런도 짝의 문화가 일을 낸 거잖아. 우리나라 병풍도 그래요. 새와 꽃을 보면 다 짝이 있어. 딱 하나 예외가 있지. 물고기. 물고기는 세 마리야. 삼어(三魚). 왜 그런지 알아요? ‘고기 어(魚)’가 ‘여가 여(餘)’와 음이 비슷해. ‘삼여(三餘)’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비오는 날, 겨울, 밤은 책 읽기 좋은 여가시간이라는 말로, 아무리 바빠도 삼여를 활용하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야. ‘삼여’를 그림으로 그릴 수 없으니 음이 같은 ‘세 물고기’로 표현한 것이지.”
   
   삼여와 삼어, 비합리와 우연이다. 합리적 사고와 논리와는 반대되는 개념. 이어령 교수는 “합리적 발상으로는 도저히 창조가 안 나와”라며 말을 이었다. “창조를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돌연변이지. 이야기의 구조로 보자면 ‘기승전결’에서 ‘전(轉)’에 해당해. 합리주의 일변도의 컴퓨터 시스템으로는 나올 수 없는 게 창조야. 그걸 한국인이 가장 잘하잖아. 순발력에서 나오는 임시변통을 브리콜라주(bricolage·주위의 도구를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라고 해. 산에 다니면서 지팡이와 닮은 도구를 찾고, 대장장이 기술로 도구를 만들어내는 건 브리콜라주지. 그런데 이걸 천시하고 점점 공학적 기술과 논리력이 강한 엔지니어들에 의존하잖아. 그게 문제라는 것이지.”
      

 

▲ 지난해 ‘제1회 청주 젓가락 페스티벌’에 참석한 이승훈 청주시장(왼쪽)과 이어령 교수. photo 이어령저작권보존위원회

   “나는 이야기의 이야기를 연구해온 사람”
   
   미국과 유럽인들 사이에서 젓가락질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뉴욕 맨해튼의 한식당이나 일식당에서 젓가락질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미국인들이 꽤 있고, 젓가락질 잘하는 것이 상류층의 상징으로 여겨진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때 동석한 김우진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실장이 사진 한 장을 찾아서 보여줬다. 2014년 방한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자연스러운 젓가락질로 기름떡볶이를 먹는 사진이었다.
   
   동양인의 수저와 서양인이 사용하는 포크와 나이프. 그는 이 식도구의 차이에서도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를 읽어냈다. 이 교수는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부엌에 있어야 할 식칼이 어쩌다가 방에 나와 있으면 아주 질색을 하셨어. 불상지물(不祥之物)이라며. 차마 눈으로 못 볼 흉측한 물건이라는 뜻이지. 그런데 서양은 어때요? 칼과 포크가 아예 테이블 위에 떡 하니 나와 있잖아. 식사를 할 때에도 전쟁을 하듯이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는 문화권이지.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바르트가 재미있는 비유를 했어요.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하는 서양인은 발톱으로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처럼 보이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동양인은 부리로 모이를 쪼아먹는 새처럼 보인다고 했지.”
   
   이쯤에서 뻔한 우문 하나가 생겼다. 한국인은 소근육이 발달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젓가락질 덕분일까, 아니면 원래 소근육이 발달한 것일까. 이에 대해 묻자 그는 “허허” 웃더니 “그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했다. “그런 연구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 접근법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지. 나는 젓가락의 젓가락성, 이야기의 이야기를 연구해온 사람이에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연구하는 사람이지, 만들어진 이야기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야. 메타언어, 초(超)언어를 연구해온 것이지. 사람들이 ‘스마트하다’는 말을 쓰잖아. ‘냉장고를 열어’ 해서 열리면 얼마나 편하겄어. 냉장고를 스마트하게 만들려면 냉장고를 연구해야 하지. 냉장고가 무엇인지를 냉장고 밖에서 내다보는 거예요.”
   
   그는 ‘세미오시스(semiosis)’를 언급했다. 기호학의 용어로 의미 생성의 최소 단위.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제자인 기자는 ‘기호학의 이해’ 수업이 떠올랐다. 수업시간에 이 교수는 소설 한 편을 유의미한 작은 의미 단위로 그 관계를 찾아냈다. 텍스트 하나하나, 부분과 부분의 관계를 찾아내 그 관계마다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의미의 집을 지었다. 그렇게 지어진 집은 단순히 기승전결의 이야기로 치환될 수 없는 새로운 집이었다. 풍성하고 탄탄한 의미들의 집. 비단 작품뿐 아니었다. 그는 창조의 큰 패러다임의 변화는 부분에서 관계로, 개체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젓가락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막대기를 부러뜨려 젓가락으로 사용한 최초의 인류를 상상하고, 그 이후 숱한 인류가 사용하면서 켜켜이 쌓아온 젓가락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곧 이어령 교수가 쓴 ‘젓가락의 문화유전자’라는 단행본이 발간된다고 한다. 책 한 권에 걸쳐 젓가락 이야기만 한다. 이어령은 2015년부터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 대신 젓가락데이로 기억하자고 제안했다. “빼빼로는 갸름한 모양의 막대기 과자야. 짝이 아니지. 엄격한 의미에서 11월 11일은 빼빼로와 별 관계가 없어. 빼빼로가 네 개 있는 날이잖아. 오히려 짝으로 된 젓가락이야말로 11의 속성과 밀접하지. 젓가락은 반드시 두 개니까.” 근본을 알 수 없는 상업주의로 물든 날 대신, 천년 이상 켜켜이 쌓여온 젓가락의 문화유전자를 기억하자고 한다. 새로운 문화부흥운동이라 할 만하다.
   
   인터뷰 끝난 후 이어령 교수에게서 짤막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젓가락질은 감상주의적 과거의 추억이 아닙니다. 미래에 던지는 희망이고 전략입니다. 젓가락은 하드웨어, 젓가락질은 소프트웨어입니다. 인공지능의 스마트 젓가락을 만들면 모든 음식의 데이터가 한데 모입니다. 나트륨, 중금속, 혈당 등 매끼마다 전 국민이 먹는 음식 데이터가 빅데이터(Big Data)가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활용도는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인류가 일찍이 꿈꿔 보지 못한 스마트젓가락으로 발전하는 것이지요. 애플도 구글도 못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젓가락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432100017&ctcd=C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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